임민철 기자    imc@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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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클이 법원에서 프로그래밍 언어 자바의 'API저작권' 개념을 인정받아 구글 안드로이드에 권리를 침해당했음을 입증했다. 향후 API 저작권 인정이 일반화될 경우 IT분야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게 들린다.

 

미국 지디넷은 9일(현지시각) 오라클과 구글간의 자바와 안드로이드를 둘러싼 2차 소송 판결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정리한 독립 애널리스트 조 맥켄드릭의 칼럼을 게재했다.

 

맥켄드릭은 자바의 API저작권을 유효하다고 본 법원 판결에 ▲API를 저작권으로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의 산업적 의미 ▲태동기에 있는 'API 경제', 그리고 개발자 및 기업들이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고 연결할 수 있는 유연성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 ▲개발자가 자신이 노력한 결과물에 대해 일부 보호를 받을수 있을지 등에 초점을 맞췄다.

 

그에 따르면 API는 매우 단순하다. 그런만큼, 다양한 개발자들이 만들었다고 해도, API들은 유사할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API가 만들어지고 사용되는 현상은 더욱 가속될 전망이다. API관리 서비스, 솔루션 업체 '3스케일'은 지난해말 1만개 이상의 공개된 API가 있고, 올해 업계에 공개된 API와 비공개 API의 규모가 10만~20만개로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이런 상황에서는, API 저작권을 보호함으로써 얻을만한 실익이 없을 뿐아니라 오히려 부작용마저 우려된다는 입장이 일반적이다.

 

API 전문 업체 에이피지(Apigee)의 애드 아누프 제품전략담당 부사장은 구글 안드로이드가 오라클 자바API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법원 판결에 대해 "자바의 파편화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면 오라클 논리를 받아들이는 것도 일부 장점이 있지만 API 저작권을 인정한다는 발상과 자바 파편화를 예방하는 방법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오히려 역효과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또 잠재적인 소송 위험을 피하기 위해 (저작권 시비에 걸리지 않도록 고안한) 복잡한 API가 확산되게 조장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애너프 부사장의 동료인 밥 파가노는 몇년전 IT잡지 와이어드와 가진 인터뷰에서 API저작권이 인정될 경우 나타날 문제를 구체적으로 전망했다.

 

그에 따르면 API의 독점성이 인정되면 누군가 대량으로 API 저작권을 확보하고 소유권을 주장하려 할 것이고 인터넷 주소나 트위터 서비스 API가 통제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API 사용이 제한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요즘 많이 쓰이는 REST(Representational State Transfer) API 체계에선 (종류가 다른 서비스 사이에도) API간 유사성은 대단히 크다.

 

현재 API의 개방성과 가용성을 지키기 위해 'API커먼즈'같은 커뮤니티도 활동하고 있다. API 커먼즈는 현행 저작권법 테두리에서 텍스트, 이미지, 음원, 영상 등 일반 저작물 공유를 활성화해 주는 '크리에이티브커먼즈(CC)' 개념을 API에도 적용하려는 모습이다.

 

IT미디어 리드라이트의 댄 로윈스키는 API저작권을 인정한 법원 판결로 이를 사용하는 산업계 전반에 소위 '위축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지난 2012년 1심 판결은 API저작권을 부정하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는 API저작권을 완전히 부정하지 못했던 배심원 평결을 무시한 것이었다. 이번 항소심 판결은 1심을 뒤집고 다시 배심원들에게 API저작권의 의미를 곱씹게 만든 셈이다.

 

로윈스키는 이런 취지의 판결문 일부와 1심 판결이 있었던 2012년 당시 전자프론티어재단(EFF)이 제기한 경고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API를 저작권 보호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은 '상호운용성', 즉 혁신에 매우 부정적인 파급 효과를 미칠 수 있다. API는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으며 모든 종류의 프로그램 개발에 근본이 된다. 모든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그들의 소프트웨어를 다른 소프트웨어와 맞물려 돌아가게 하기 위해 API를 사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해 1심 판결 이후 클라우드플랫폼 제공업체 랙스페이스같은 회사도 자바API 저작권을 부정적으로 보는 편이었다. 랙스페이스는 오픈소스 기반 클라우드 구축 기술 '오픈스택'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업체가운데 하나로 여러 사업자간 인프라 호환성을 위한 API와 상호운용성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구글 편만 잔뜩 있는 것 같지만, IT업계엔 오라클의 입장에 선 이들도 적지 않다. 마이크로소프트(MS), 넷앱, EMC, 소프트웨어연합(BSA), 미국 저작권등록청과 같은 회사, 단체들이다. 

 

특히 MS는 기업용 소프트웨어(SW) 제품과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에서 오라클과 경쟁 관계인데도, 오히려 1심 판결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며 오라클 편을 들었다. API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은 당시 판결이 SW산업을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실제 현업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자바API라는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한 상황이다. 오라클의 주장이 단순한 억지 부리기는 아니란 얘기다. 지디넷코리아는 1심 판결이 나온 무렵에 큐레이션사이트 에디토이를 통해 소송 과정을 정리하며 토론 대상으로 삼으려 했지만 국내 업계는 아직 자바 API 저작권 개념에 대해 큰 관심은 없는 듯 하다.

 

자바와 안드로이드를 둘러싼 구글과 오라클의 법정공방은 지난 2010년 시작됐다. 오라클이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 자바API 저작권과 가상머신(JVM) 기술특허 권리를 안드로이드에 침해당한 대가로 61억달러 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소송 과정에서 오라클이 주장한 자바 기술특허 관련 청구항은 대폭 축소, 결국 기각됐다. 1심 배심원 평결에선 자바API 저작권이 인정됐으나, 2012년 6월 윌리엄 앨섭 판사는 이를 뒤집고 구글의 손을 들어 줬다. 오라클은 즉시 항소 의지를 밝혔고 지난해 초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심리를 진행해 5개월만에 내놓은 판결에 따라 구글의 손을 들어줬던 1심 판결은 파기,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으로 환송됐다. 향후 법원은 이 사안에 또다른 판사를 내세워 구글이 안드로이드에 사용한 자바API 저작권 침해가 공정이용(fair use) 범주에 해당하는지를 판단케 된다.